지성에서 영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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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8
제1부 교토에서 찾다
01 쌀 한 자루 영혼 한 자루의 무게 19
02 까마귀와 함께 아침을 25
03 지는 꽃의 아름다움 31
04 손님처럼 오는 신들 37
05 잠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 43
06 그림, 그리움, 그리고 손톱으로 긁은 글씨 49
07 창조의 힘 흉내내기 57
08 메멘토 모리 65
09 아버지의 이름으로 71
10 설거지를 할 때가 왔구나 77
11 끈을 잘라라 85
12 휴일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 89
13 신앙에 이르는 병 99
14 살찐 새는 날지 못한다 105
15 회개 없이 돌아온 탕자 115
16 낙타의 눈물 123
17 예술의 힘과 사막의 사자 129
18 양치기의 리더십 137
19 한국말로 내리는 눈 145
제2부 하와이에서 만나다
20 전화 한 통으로 바뀐 세상 151
21 그날 새벽이 그렇게 빛나지만 않았더라도 159
22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아침 뉴스 167
23 버려진 돌로 만드는 신전 173
24 세례는 씻는 것이 아니라 캐내는 것 183
25 이마를 짚는 손 191
26 어머니의 귤 203
27 인력거를 탄 어머니의 부활 213
제3부 한국에서 행하다
28 무지개의 빛깔은 몇 개인가 219
29 문화를 뛰어넘는 기독교 229
30 예수님의 두 손, 바위와 보자기 237
31 제비가 물어다준 신앙의 박씨 243
32 사하라 사막을 적시는 눈물 249
33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255
34 아버지 없는 사회 263
35 참된 포도, 시지 않은 포도의 수확 267
36 인간은 시간으로 재고 하나님은 마음으로 재신다 273
제4부 아버지와 딸의 만남
민아의 편지 빨간 우체통의 작은 기적 284
아버지의 편지 너는 나의 동행자 286
37 믿음의 시작 289
38 더이상은 내 힘으로 살 수 없구나 299
39 주님 저를 써주세요 309
40 지상과 천상의 두 아버지 317
제5부 문지방 위의 대화 331
책소개
영성에 대한 참회론적 메시지!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의 세례 10주년을 맞아 딸 이민아 목사의 간증 부분을 되살려 새롭게 펴낸 『지성에서 영성으로』. 저자가 교토에서 머물던 2004년부터 세례를 받은 직후인 2007년까지의 일기, 강연, 인터뷰 글, 신문기사 등을 모아 정리한 내면의 기록이다. 세례를 받기 전의 교토에서의 이야기, 결정적으로 영성의 단계에 들어가게 된 하와이에서의 이야기, 한국에서의 이야기가 차례로 수록되어있다. 책의 중간에는 저자의 시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냉철한 지성의 한없이 뜨겁고 순진한 일기장
영성의 빛을 향해 더 높은 곳으로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 그는 기성의 모든 권위에 대해 거부하는 몸짓으로 살아온 냉철한 지성인이자 무신론자입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도 없고, 어떤 종교도 믿어본 적 없었던 그가 2007년 7월 24일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신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많은 직함을 갖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이 길이 외로울 수도 있지만 신자로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싶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누구도 읽을 수 없었던, 냉철한 지성의 한없이 뜨겁고 순진한 일기장입니다. 한 무신론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까지의 인간적인 망설임을 담은 고백록으로, 저자 이어령이 크리스천으로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그에 따른 진솔한 생각을 세세히 기록했습니다. 책 말미에는 여러 언론사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함께 실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높은 성역의 문지방 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고백한 이후, 10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열림원에서는 저자 이어령의 세례 10주년을 맞아 최신개정판에서 빠졌던, 따님 이민아 목사의 간증 부분을 되살려 새롭게 펴냅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책 전체의 메시지로 볼 때 그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땅에서 하늘처럼 살다 2012년 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이민아 목사는 감히 짐작하기 힘든 고통을 때론 뜨거워 목이 데일 듯한 문장으로, 한편으론 한없이 차분하게 서술해갑니다. 예수님은 눈물로 어머니를 위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고 슬픔을 뛰어넘는 희망을 이야기하십니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인간의 삶은 무엇이고 그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임하시는지 고백한, 이 먹먹한 편지를 받아들고 한동안 말없이 서 있게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이 범접하지 못하는 영역은 예술과 종교의 ‘영성’이라고 저자 이어령은 말합니다(2017년 8월 사랑의 교회 강연). 미래사회 종교는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빈 공간을 영성으로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이죠. 새시대의 문턱에서 이어령이 영성에 대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깊이 있는 고백과 의문, 믿음의 메시지는 읽는 이를 “영성의 빛을 향해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작은 표지標識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섬이다
무신론자이기에 더욱 절실하고 높이 울리는 기도
이어령은 교토 연구소에 와서 생활하는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단 한마디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누군가와 만나 얘기하고 식사하고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 즉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죠. 저자는 자신을 외딴 섬에 표류하게 된 로빈슨 크루소에 비유하며 혼자라는 사실이 주는 고통을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막상 누군가를 만나게 될까 두려워하는 모순된 마음도 털어놓지요. 외롭다는 말은 곧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국의 모든 풍경과 뉴스, 사람들을 아무 부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교토 생활의 행복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이국땅에서 느끼는 존재론적 외로움을 질료로 삼아 꼬박꼬박 일기를 써나갑니다. 일기 쓰기는 빈 종이의 공백, 그 헛헛함을 문자로, 의미로 메워가는 행위이지요. 저자는 흰 고래 모비딕을 쫓는 에이하브 선장을 원고지의 공백과 맞서 싸우는 작가에 비유한 누군가의 평을 예로 들면서, 자신 역시 그 흰 공백의 심장을 꿰뚫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그 바다에서 익사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글을 쓰리라 결심하지요. 추운 겨울에도 피는 수선화처럼 끝끝내 고개 들고 일어서는 언어들을 찾아내서요. 다음에 소개할 일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어령은 세례를 받기 전인 2004년 교토에서의 연구소 생활 중 하루를 회상하며 책을 시작합니다. 빈방의 어둠이 싫어 불을 켜놓고 다녔던 시절, 슈퍼에서 쌀 한 자루를 사들고 집으로 걸어오다 그는 문득 묻게 됩니다. 초인종을 누르면 누군가 기다리다 문을 열어주는 작은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일까? 희망의 별도,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빛도 아닌, 그저 남의 나라 땅에 놓인 방 한 칸, 그 창백한 형광등 불빛을 향해 걸어가며 어깨를 짓누르는 쌀자루의 무게를 느낍니다. 평생 책과 종이, 문자와 정보에 허덕이며 비틀비틀 걸어온 자신의 발소리를 그제야 듣게 된 것이지요. 집에 돌아온 그는 쌀자루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내려놓기 위해서, 이 빈방을 물질이 아니라 영혼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쓰인 시가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고 고백하며 시작하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입니다. 그것은 저자에게, 마감에 쫓기며 쓰던 글과는 다른, 원고료로 환산할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이어령은 말합니다. 먹을 것이 족하고 목을 적실 물이 넘쳐나도, 추위를 막아주는 단단한 벽이 있어도 어디엔가 나처럼 무거운 쌀자루를 내려놓고 빈방에 앉아 몰래 기도를 드리는 무신론자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겉으로는 강한 체 오기를 부려도 누군가 옆에서 사랑한다고 손을 내밀면 금시 울음을 터뜨릴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죠.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그리고 매 순간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혼자 식탁에 앉아 있어도 “이것이 내 살이니라, 이것이 내 피다”하며 빵을 저미어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하고 저자는 묻는 듯합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목숨 속에, 나의 숨결 속에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
저자는 자신이 세례를 받게 된 까닭이 어쩌면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를 의미하는 라틴어 문장 ‘메멘토 모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친구도 없이 혼자 보리밭 길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눈물이 터졌던 여섯 살 무렵을 회상하지요. 귀가 멍멍하도록 고요한 대낮에 새하얀 햇빛 한복판에 서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던 그날을. 그리고 밤에 혼자 눈을 떴을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죽은 듯이 주무시는 어머니의 코에 고사리 같은 손을 대었을 때 느껴지는 숨결까지도. 죽음과 삶은 나뉘는 것이 아니라 늘 서로의 곁에 있는 짝임을, 하나님은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계셨음을 그때부터 깨달은 듯하다고 뒤늦게 고백합니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는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슬픈 한계이자 조건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릎을 깨뜨리거나 코피가 나면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처럼 상처를 입어야만 하나님을 부르며 달려갑니다’(98쪽).
그래서일까요. 교토의 일기장은 거의 한 달 가까이 병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병은 자신의 몸 전체를 느끼게 합니다. 이국땅에서 감기에 걸린 아내와 통화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각자가 각자의 아픔을 앓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지요. 그렇기에 인간은 혼자 병을 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존재는 병이고 사람은 병을 통해서 남과 어울리기 때문에, 우리에겐 서로 걱정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종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겠죠. 저자의 표현대로 병은 종교에 다가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지상의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딸을 통해서 내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저 높은 세상을 보았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첫번째 계단, 생애에서 가장 긴 한 해처럼 느껴진 교토에서의 1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심정이 됩니다. 회개 없이 돌아온 탕자로, 무신론자의 기도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 딸 이민아 목사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전화를 받기 전의 삶으론 돌아갈 수 없는, 그런 한 통의 전화를 말이죠.
아내와 함께 급히 딸이 있는 하와이로 달려갔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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