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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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롭게 나를 채우는 비움의 시간
저자 리샤오쿤은 대학 강단에서 40년간 미술 교육에 헌신한 인물로 서예와 수묵화 분야에서 예술가로 명성을 쌓았고, 대만 색채학의 개척자이자 북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오랫동안 선을 수행해 온 수행자이기도 하다. 깊은 선심이 작품 속에 녹아든 덕분에 그의 그림은 격이 높고 일상생활에서 깊은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인간복보(人間福報)에 5년 가까이 연재한 칼럼의 정수만을 모아 집대성한 이 책은 선화(禪畵), 선시(禪詩), 선어(禪語)로 구성되어 있다. 선화는 먹의 농도와 무채색과 유채색의 조화를 통해 선의 흥취를 보여주고 여백을 통해 여유와 사색의 기회를 준다. 여기에 화룡점정의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선시와 선어다. 문인의 시 속 한 구절, 스승과 제자의 대화, 선문답, 작가의 자작시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훌륭하다. 무아(無我), 마당 쓸기, 글씨 쓰기, 차의 선, 천지, 인간 세상, 생사, 도를 묻다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펼친 면마다 그림과 글이 조화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무아’를 말할 때는 “우리의 이름이 살아 있을 때 아무리 화려해도 솟구쳤다가 가라앉아 물 위에 흩어지는 물보라처럼 죽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고 하고, ‘글쓰기’에 대해 말할 때는 “글쓰기는 대화입니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멀리 있는 친구와 대화하고 대자연과 대화하고 우주 전체와 대화를 나눕니다”고 하여 나를 잊고 이름도 잊고, 우주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천지’를 말할 때는 “떠돌던 구름이 조용히 멈추었네. 먼 하늘가에서 멈춘 구름 곧 석양이 내려와 화려한 옷을 지어주길 기다리고 있구나”라고 하여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가르쳐주고, ‘생사’를 이야기할 때는 “우리 인생은 우주의 만법(萬法)과 함께 돌아간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고 모인 것은 또 흩어진다네. ‘무상’이라는 놀이는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어라”라고 했으며, 또 ‘길을 묻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고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마음속 정적도 들을 수 있다”는 말로 무상의 깨달음을 전한다.
첫마음의 나와 마주하는 마음 쓸기의 힘
저자는 현대사회는 물욕이 너무 팽배해 있고 명리를 목숨처럼 여긴다며, 이 책을 통해 최소한 10분 만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일을 행하여 올바른 선의 순환을 이루는 시간을 가져 볼 것을 제안한다. 또한 목적의식과 성과, 불안과 걱정에 매몰되기 전에 먼저 마음을 비우라고 충고한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여백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서 브레이크 페달로 발을 옮기라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도 뒤처지고 있는데 가당키나 하냐는 핀잔을 들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막상 길을 잘못 들어 벼랑 끝에 서거나 준비 없이 악천후를 만나 방향과 의지를 상실했을 때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게 마련이다. 이런 때에 이정표가 되어 주는 것이 나의 초심이다. 온전한 내면의 나의 첫마음과 마주하면 내 삶과 일의 목적을 되새기고 불필요한 걱정과 고민을 덜어내어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이 책이 독자의 초심을 찾는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몸 밖의 것을 좇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부처님이 나무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데 젊은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물었다고 한다. “방금 한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 여자가 내 돈을 가지고 도망쳤습니다!”라고 젊은이가 묻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찬찬히 답했다고 한다. “도망친 여자를 찾는 것이 중요한가, 자신을 되찾는 것이 중요한가?”
하루 10분, 그림 감상하면서 마음 비우세요!
저자는 “그림 속 동자승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내가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시 속에 담았다”고 ‘여는 글’에 밝히고 있다. 책 속의 동자승을 자처하는 리샤오쿤은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을 자기만의 언어와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수행자의 사랑과 성자의 지혜로 우리 마음을 밝게 비추어 우리에게 묻어 있는 속세의 먼지, 고뇌를 툭툭 털어내도록 돕고 우주의 진리와 진실을 들여다 볼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모든 것들은 지금의 걱정과 고민 속에 답을 감추고 있다. 멈추고 비우고 내려놓으면 답이 보일 것을 그러지 않고 답을 얻으려 하니 어지럽고 어려워진 것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나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며 다스리는 시간은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어지러워지기 전의 순수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본문에 수록된 선시 ‘마당을 청소하는 이유’는 짧은 글로 이 책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당을 쓸고, 상념을 줍고, 마음을 씻어낸다네. 어두운 번뇌를 쓸어내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네”
휴가는 일과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한다. 여름휴가를 지칭하는 단어 바캉스(Vacance)도 그 어원을 살펴보면 ‘빈자리’, ‘공허함’을 뜻하는 라틴어 'Vanous'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하는 'Vacatio'에서 유래되었다. 지칠 때마다 매번 휴가를 떠날 수는 없으니 하루 단 10분이라도 그림 한 폭을 감상하며 나만의 여백과 비움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끊이지 않는 걱정과 고민을 덜어내기 위해선 마음의 여백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마음 쓸기』의 선화와 선시를 감상하다 보면, 잠시지만 현실의 고민을 내려놓고 내면의 첫마음과 마주하며 평정심을 찾기에 충분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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